모처럼 돌아온 남편의 놀토다.
늦잠도 자고 맛있는 커피도 마시고 쌀국수와 카레도 사 먹었다.
화근은 아들이 포장해 달라고 한 치즈돈가스 였다.
짧은 오전 볼일과 아점 외식을 마치고 12시 전에 집에 도착했다.
쌀국수를 기다리면서, 늦잠자느라 외출하지 못한 아들에게 메뉴를 찍어 보냈고
먹고 싶은게 있으면 포장해 가겠다고 해서 사온 돈가스였다.
그런데 집에 오니 컵라면을 하나 먹은 상태였다.
내가 전화를 한발 늦게 했던 모양이다. 그전에 먹었다는 걸 보니.
치즈돈가스는 당연히 절반은 남았다.
이른 저녁을 준비하느라 부엌으로 가면서 무심코 말했다.
"돈가스 아깝다. 먹은줄 알았으면 사 오지 말걸..."
그냥 나 혼자 한 말인데. 남편은 이럴 때 귀가 밝은 건지...
기어이 거든다.
라면 먹었으면 엄마가 전화했을 때 말하지 왜 시켰냐면서....
소파에 누운 건지 앉은 건지 알 수 없는 자세로 아들이 대답한다.
"고르라니까 고른 거야."
아...
싸.... 하다.
썩 예쁜 대답은 아니었다.
그래도 뭐.. 저놈의 중2 저놈.. 하는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남편이 급발진했다.
몇 마디의 고성이 나왔다.
아마 아들의 말투 때문일 것이다.
아들은 아빠의 급발진에 놀라 방으로 들어가 훌쩍이고,
아빠는 담배를 들고 뛰쳐나간다...
하...! 상처뿐인 충돌이었다.
아들의 사춘기가 깊은 것이냐... 아니면 아빠가 갱년기가 온 것이냐.... 나는 무슨 죄냐.
급기야 아들은 저녁을 패스했고,
눈치 없이 배가 고픈 아빠는
제육볶음에 쌈까지 야무지게 싸 드셨다.
오늘도 초록병 그 아이와 함께.
우리 부부는 대화가 많은 편이다.
내가 봐도 우린 시시콜콜 많은 얘기를 나눈다.
언젠가 tv에서 가수 이효리 씨가 남편에게
자기는 말하려고 당신과 결혼한 것 같다고 하는 걸 본 적이 있는데 나는 격하게 공감한다.
요점은.. 제육을 열심히 싸 먹는 남편의 얼굴에는 후회가 가득했고 나는 또 말을 꺼냈다.
"사춘기잖아.. 한참 그럴 때지. 너무 맘에 두지 마셔."
남편도 끄덕인다. 담배 한 대 피우고 올라오면서 큰 소리 낸걸 바로 후회했다면서...
고마운 일이다. 그래서 엄마가 생각났을까...
"나는 그냥... 져주기로 했어. 애한테..."
"전에 우리 엄마가 그랬거든. 알다시피 내가 성격 진짜 별로잖아.
어떤 날 눈이 펑펑 왔는데 늦잠은 잤지. 학교는 늦었지. 시골이라 버스도 안 들어오지.
난 산을 넘어가서 차를 타야 되는데 도대체 몇 가지에 화가 나는지도 모르게 그렇게 짜증이 나더라."
"근데 엄마는 나랑 그 길을 넘어가서 내가 버스 타고 출발할 때까지
진짜 어쩌면 그걸 다 받아주고 한마디도 화를 안 냈어.
그냥 눈 길에 내 손을 잡고 열심히 같이 걷기만 했어.
그날 저녁에라도 "넌 어쩜 엄마한테 그렇게 짜증을 내냐"
하는 소리도 없고. 생각해 보면 그냥 평생을 그랬어."
"근데 그게.
내가 크고 나니까 생각이 나고 알겠더라.
우리 엄마는 어쩜 그랬을까..."
"그게 너무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서 나도 그렇게 그냥 애한테 져주고 받아주는 엄마 하고싶어 나는.
잘나고 이겨먹는 엄마보다,
맨날 져주고 받아주는 그런 엄마 할 거야..
그거 크면 애가 다 알아..."
소주 한잔을 들이켠 남편이 고맙게도 동감한다고 말해준다.
앞으로 집에서 오늘 같은 큰소리는 안내야겠다고...
장모님 같은 아빠 해야지.... 해준다.
고마운 남자.
한~숨자고 나온 아들은 해맑게 배가 고프다고 그 와중에 저녁밥 메뉴를 확인한다.
제육이라는 소리에 눈을 껌뻑껌뻑하는.. 아... 나쁜 놈.
같이 자란다. 나도 아이도 내 남편도.
2023.04.12 - [분류 전체보기] - 엄마의 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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